이 국종 ⟪골든아워⟫ 1, 2권

By | 2018-10-30
2012년 11월, 아주대학교병원은 정부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에서 탈락했고, 그 사업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나와 팀원들은 절망했다. 몇 달 지나 새해 봄이 되어서도 만신창이인 상황은 같았다. 나와 팀원들은 모두 헤져가고 있었다.

… 나는 중증외상센터 설립 과정에서 실제 한국 사회가 운영되어가는 메커니즘을 체득했다. 그 과정은 매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만큼 지옥 같았다. 시스템은 부재했고, 근거 없는 소문은 끝없이 떠돌았으며, 부조리와 불합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돈 냄새를 좇는 그림자들만이 선명했다. 그 속에서 우리 팀원들은 힘겹게 버텨왔다. 나는 어떻게든 정부 차원의 지원을 끌어들여 우리가 가까스로 만들어온 선진국형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더듬어가며 길을 찾아왔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와 팀원 모두가 쉼 없이 분투해왔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당도하여 확인한 것은, 중증외상센터 사업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지닌 투명성의 정도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뿐이다. 지금껏 선진국형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헛된 무지개를 좇아왔으나,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나는 우리가 여태껏 해온 일들이 ‘똥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도, 까치발로 서서 손으로는 끝까지 하늘을 가리킨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곧 잠겨버릴 것이고, 누가 무엇을 가리켰는지는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뒤, 또 다른 정신 나간 의사가 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마음먹는다면, 우리의 기록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기록의 일환이다.
— ‘서문’ 중에서

이 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서문을 읽으면서 뜻밖의 감정이입이 되었다. 물론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면서 겪은 이 교수님의 고뇌에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후진적인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온 나라의 어느 분야든 그 분야에서 올곧은 길로 정진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런 체험을 독하게 받는 것같다.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나고 가슴 아파서 힘들게 읽었다. 언론에서는 관료들의 문제를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다. 늘 대면하기 때문에서일까?


“이 거친 문장들 중 어느 한 자락에서라도 김훈 선생의 결이 흐릿하게나마 느껴진다면, 그런 까닭임을 미리 밝힌다.
서툰 글솜씨로 책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돼 부끄럽다.”면서 “나는 훌륭한 말솜씨나 글재주와는 대척점에 선 전형적인 ‘이과 남자’다.”고 부끄러워했지만, “내게 《칼의 노래》는 나의 이야기였고, 팀원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힘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문체는 결코 부끄럽거나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긴박한 상황을 읽는 이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 불모지나 다름 없는 곳에서 중증외상센터를 뿌리내리게 해 보려는 전문의로서의 치열함을 이 책의 문체에서도 느껴진다. 하물며 책 내용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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