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

By | 2026-02-15

나에게는 잔량 부족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 배터리, 연료, 실탄… 어렸을 때, 아버지(1936~1980)도 완전 충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보이는 행동을 보이시곤 했다.

아버지께서 사냥을 나가기 전에 공기총에 공기압을 채우면서 10번이 표준인데 30번이나 채워넣은 다음 출발하셨다. 곁에서 나는 저러다 총이 터지지나 않을까 무서워 하곤 했다.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내 폰의 배터리 잔량이 50% 아래로 내려가면 나는 불안해진다. 몇년 전부터 테슬라 전기차를 타면서 배터리 잔량이 50%는커녕 60% 아래로만 나려가도 아파트 주차장에 돌아오면 80% 권장치까지 충전을 한다. 혹한의 날씨만 아니면 40% 잔량이라도 200km는 주행할 수 있는 차인데도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늘 한번 충전으로 600~800km쯤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건전지처럼 교체 가능한 형태이고, 미리 사둔 건전지가 있을 때는 — 예비용 건전지를 항상 준비해 둔다 — 쓰고 있는 건전지가 간당간당해도 게의치 않는다. 예비용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없다면 잔량에 대하여 강박증이 생기는 듯하다.

예전에 내연기관 차를 운행할 때도 나는 연료 고갈로 운행 중에 멈춘 적이 없었다. 계기판의 연료 표시기가 30% 아래로 내려가게 주유를 하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유소는 늘려 있는데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고속충전 시설이 많지 않은 전기차에서 50% 미만의 배터리 잔량으로 집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나의 강박증이 허락하지 않는다. 10km 안팎의 멀지 않은 시내를 다녀와야 하더라도, 산술적으로는 충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 된다. 어떤 상품(물건)의 초기 상태 유지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습관으로 보인다.

이런 나의 강박증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검수하는 일을 하던 나의 직업에는 긍정적인 직업 근성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은퇴한 지금은 사는 데 방해가 된다. 이제는 지나친 강박증을 내려놓고 싶은데도 잘 안 된다.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느슨하게) 시도해 보고 있다.

일단 세운 목표는 시일이 오래 걸려도 포기하지 않고 틈틈이 도전해 보는 습관이 있다. 힐패를 거듭해도 잊지 않고 꾸준히 시도하다 보면 꽤 많이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로 끝난 것들도 있었다. 성공한 것들은 수영(10년 넘게 걸림), 마라톤, 골프, 빠른 청독; 실패한 것들은 속독, 외국어, 여행, 풀코스 330 (325 욕심 내다 333에서 그침), 단축 철인 3종 참가(이건 오래 전에 포기)…

4 thoughts on “강박증

  1. 목맨천사

    잠이 안와서 밤새 실용 서버 모니터링 및 문제점을 찾아봤어요.

    저의 잠정적인 결론은 알리바바 네트워크로부터의 무분별한 공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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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목맨천사

    저는 배터리 강박증은 없는 듯 한데, 정리에 대한 강박증은 누구보다 심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각각의 강박이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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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park Post author

      좋은 습관 자랑하는 거죠?
      적당한 타협도 꼭 필요할 때가 있는데,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강박증세의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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