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필수템 필코 마제스터치 적축 키보드

By | 2023-12-12

키보드는 눈으로 보고 치는 것이 아니라 익혀서 안 보고 열 손가락으로 치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대학 2학년 여름 방학 때 은사님의 지도로,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수동식 타자기를 익히게 되어 지금까지 글쓰기는 글자판으로 입력하고 있다. 요즘에야 키보드로 글쓰는 일이 일반적인 일이지만, 1982년 당시에는 주변에 타자기를 사용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러니 당시 우리 과 대학 교수님이던 은사님의 혜안은 얼마나 앞서 있었고, 또 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ibm-84-keyboard
졸업 후에 사용하기 시작한 PC 키보드라는 것도 지금과는 다르게 84키라는 걸 썼다. 마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같다. 문자판 바로 왼쪽에 10개의 기능 키가 있어서 Ctrl, Alt, Shift 키와 함께 총 40가지 단축키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90년대 무렵에는 84키 대신 101키라는 형태가 나왔는데, 기능 키가 문자판 위로 가면서 12개로 늘어났지만 단축키로 재빨리 누르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러다 보니 기능 키와 Ctrl, Alt, Shift 키 조합으로 단축키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게 다 애플과 차별화를 두려는 MS가 윈도우를 내면서 시도한 것으로 아는데, 40가지 단축키 방식을 짓밟아버린 등신짓이라 생각했다. 뭐, 어쩌겠는가? 나오질 않으니 적응하는 수밖에…

한동안 손에 맞는 키보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알게 된 것이 체리 스위치를 쓰는 기계식 키보드였다. 청축/갈축/적축의 세 가지 종류가 있고(실제로는 종류가 더 많다) 3~5만원 정도에 나오던 키보드가 15~20만원대로 팔리고 있어서 좀 놀란 기억이 난다. 청축은 빠르고 정확한 입력이 필요한 게임 유저에게는 좋지만, 입력 소리가 시끄러워서 글쓰는 용도로는 맞지 않다고 했다. 갈축과 적축 중에서 처음에는 갈축을 추천 받았는데, 필코(FILCO) 크림치즈 갈축 키보드를 주문하여 써 보니까 나처럼 소음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거슬릴 정도의 소리가 났다. 순간의 선택이 나를 비껴가는 경험이었다. 어디 가서 갈축과 적축을 시타해 보고 결정했어야 했는데…
필코 크림치즈 갈축 89 키보드
그러다 조금 저렴한 레오폴드 적축 키보드를 중고로 들여서 써 보니, 텃치감과 소음 모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저렴한 브랜드라 그런지 터치 키감이 필코보다는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필코 마제스터치3 적축 풀배열 키보드
1년쯤 사용해 보고 나서 필코 적축으로 마음을 굳히고 주문을 하려는데, 유무선 겸용으로 새로운 제품이 나와 있지 않은가? 그 바람에 헷갈려서인지 호기심에서인지 유무선 겸용 저소음 적축을 주문하고 말았다. 결과는 또다시 실패! 이놈의 택일 문제의 징크스는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참인지…

저소음이라는 점은 맞는데, 터치감이 깔끔하지 않았다. 레오폴드 적축보다 못했다. 열흘도 안 되어 새로 산 키보드를 방출~

우여곡절 끝에 내게는 숫자 키가 없는 87 키보드가 좋지만, 엑셀 업무를 봐야 하는 이는 풀배열 키보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랗다. 이제는 충분히 체험하고 주문하리라 마음 먹고 필코 적축으로 풀배열을 중고로 들여서 써 보니, 내 마음에 아주 쏙 든다. 잠시 리얼포스 104UB 키보드도 한 달쯤 써 봤지만, 내게는 필코 적축이 더 좋아서 필코 적축을 꺼내서 쓰고 있다. 역시 이 느낌이야!

언젠가는 “필코 적축”으로 숫자 키 없는 87형이나 숫자 키 있는 풀배열로 사리라 마음 먹고 주문한 아이오매니아 사이트를 둘러보니, 어라… 그새 저소음이 아닌 일반형 필코 적축 제품 종류가 줄어들고 있다. 아…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