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그룹 부활시킨 ‘M&A 승부사’레이프 요한손

By | 20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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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를 버렸다 볼보를 살렸다
볼보그룹 부활시킨 ‘M&A 승부사’레이프 요한손
“M&A할 회사를 존중하라 이사진 막 몰아내지 마라”

사고싶은 ‘기업리스트’ 항상 준비…
삼성重건설기계 부문 인수가 나의 최고 작품

김덕한 산업부 기자예테보리(스웨덴) ducky@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스웨덴 자동차 산업의 전통, 그리고 스웨덴의 자존심을 팔았다!”

스웨덴의 국민 기업 볼보(Volvo)가 1999년 그룹의 상징과도 같았던 승용차 사업(Volvo Car Corp.)을 미국 포드(Ford)에 매각하자, 스웨덴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룹의 ‘심장’을 도려내는 대수술을 감행한 사람은 레이프 요한손(Leif Johansson・57) 회장. 1997년 부임한 그는 볼보 본사가 있는 예테보리에서 나고, 자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심지어 10대 때 볼보 생산라인에서 ‘기름밥’을 먹기도 했다. 승용차 부문은 볼보그룹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주력 사업이고, 볼보는 럭셔리 브랜드의 대표 격 아닌가?

그러나 요한손 회장은 화려함 대신 실속을 택했다. 포화 상태의 승용차 시장에서 세계 23위 자리를 포기하는 대신, 결코 화려하지 않은 트럭과 건설중장비, 버스 등 고성장 사업에 집중하는 길을 택했다. 승용차를 팔았지만, 트럭 등 그룹의 새 핵심사업 분야의 세계적 업체들을 마치 쇼핑하듯 계속 사들이고, 해외 생산기지를 확충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었다.

작년 말 볼보그룹 본사에서 만난 요한손 회장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용차 사업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그는 “더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면서 “지금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결정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브(Saab・GM에 매각)에 이어 볼보까지 미국 회사에 매각됨으로써 스웨덴의 승용차 브랜드가 없어졌는데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볼보와 사브가 스웨덴의 영원한 자산이 돼야 한다고 보는 것, 스웨덴의 국익에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보는 것은 국수주의적 관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기업 인수・합병(M&A)의 살아 있는 교과서라 할 만큼 수많은 M&A를 진두 지휘했다. 그가 사들인 기업이나 사업 부문이 15개를 넘는다. 2001년 미국의 르노(Renault)트럭과 미국의 맥(Mack)트럭을 인수해 유럽 최대, 세계 제2의 트럭메이커로 도약했다. 또 삼성중공업 건설기계 부문을 비롯해, 닛산디젤, 중국 최대 휠로더(wheel louder・굴착된 토사와 골재, 파쇄암 등을 운반기계에 싣는 중장비) 업체인 링공(Lingong), 미국잉거솔랜드(Ingersoll Rand)의 도로정비 사업부문이 모두 그의 쇼핑 대상이 됐다.

요한손 회장은 스칸디나비아인 특유의 6척(尺) 거구였다. 부드러운 미소와 낮은 톤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뤘다. 그러나 9년 전 승용차 사업 매각 직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새벽 두 시면 잠에서 깨어 엄청난 긴장감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이어 말했다. “그렇지만 불을 밝히고, 10년 뒤를 생각하면 ‘현실(fact)’이 보입니다. 우리는 지금 승용차 산업에서 세계 23위에 불과하고, 시장은 엄청난 경쟁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승용차 부문 매각 뒤 그는 엄청난 역풍에 시달렸다. 승용차 부문 이익률이 저조하고 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던 그의 말과는 달리 포드로 팔린 볼보자동차의 그해(1999년) 영업이익이 시장에서 예상하던 10억 달러를 훨씬 뛰어넘어 39억 달러에 달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요한손의 예언은 2000년이 되어서야 현실로 나타났다. 볼보자동차의 영업이익이 5억 달러대로 떨어졌으며 그 뒤엔 2003년까지 1억 달러 내외로 추락했다.

반면 뼈를 깎는 대수술을 겪은 볼보그룹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2000년 136억 달러였던 그룹 매출이 2006년 377억 달러로 2.8배, 영업이익은 7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4.3배 성장했다. 무엇보다 트럭과 건설중장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게 됐다.

그룹의 ‘심장’을 잘라내고, 화려하지 않은 중후장대(重厚長大) 사업에 집중하는 대수술을 10년째 집도한 명의(名醫) 요한손. 그의 답변은 부드러웠지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분명했고, 냉정했다. 그는 M&A를 통해 얻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 분야에서 존경받는 기업을 인수하고, 그 기업의 이사진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고, 그것이 볼보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도 했다.

인구 900만에 불과한 스웨덴에서 볼보, 이케아(IKEA)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스웨덴은 매우 작은 시장이며 임금도 높다”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기술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 뿐이며 그러자니 경쟁력을 키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M&A의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M&A를 통해 얻어낼 것이 무엇인지 명확한 목적을 정하고, 해야 할 일의 목록(activity list)을 만들고, 타임 테이블(time table)을 잘 만들어 세가지가 다 들어맞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수많은 기업을 인수해도 기업 문화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추상적인 기업 문화보다 중요한 것은 성과나 실적을 정확히 측정하는 경영”이라며, “정확한 데이터가 존재한다면 문화적 차이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Weekly BIZ는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 이상 떨어진 한적한 교외에 자리잡은 볼보그룹 본사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격조 높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아담한 단층 건물이었다.

—볼보그룹 회장으로 10년 이상 일하고 있는데 그 동안 그룹의 핵심인 승용차 부문까지 매각하는 등 실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어떻습니까?

“흥분되는 기간이었죠. 볼보 내부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동유럽・중국인도 등 새로운 시장이 많이 생겨났고, 엄청난 규모의 인수・합병이 있었죠. 볼보 역시 그 물결 속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체질 개선을 이룬 겁니다. 10년을 돌이켜 보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서 자리를 잡아온 과정이었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룹의 상징적인 사업을 매각할 때 상당한 고통이 따랐을 텐데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까?

“자동차로 유명해진 브랜드가 자동차 부문을 매각한 사례는 우리 말고도 또 있습니다. 롤스로이스도 비슷한 사례죠. 물론 승용차 사업부문을 판다는 것은 정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생사를 같이해온 많은 동료들과도 헤어져야 했고…. 그러나 전략적으로는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승용차 시장에서 시장을 리드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았습니다. 승용차를 포기하고, 트럭・건설기계・트럭・버스 등 승용차 이외의 부문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이성적으로 올바른 판단이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까?

“전혀!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세계는 변하고 있고, 좀더 전략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세계 시장은 새로운 경쟁자들에게 연이어 열리고 있고,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이 가능한 규모를 달성해야 합니다.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결정했을 겁니다.”

—그러나 스웨덴의 또 다른 승용차 메이커였던 사브(Saab)까지 GM에 팔린 이후여서 스웨덴의 두 자동차 브랜드가 모두 미국으로 넘어갔는데 국민들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은 것 아닙니까?

“볼보와 사브는 스웨덴의 영원한 자산(asset)이 돼야 한다고 보는 것, 혹은 스웨덴의 국익에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보는 것은 국수주의적 관점이죠. 스웨덴에는 여전히 훌륭한 두 개의 자동차 브랜드가 있고, 둘 다 모두 큰 자동차 그룹에 속해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5년간 그룹 전체 매출이 약 70% 성장한 반면, 영업 이익은 이보다 훨씬 큰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뤘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단 지난 5년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뤄온 그룹 구조 변화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매우 큰 인수・합병을 이뤄왔습니다. 르노트럭, 맥트럭, 한국의 삼성중공업 건설중장비 부문, 최근엔 일본의 트럭메이커인 닛산디젤과 미국 잉거솔랜드의 도로정비 사업부문 등…. 우리는 우리 그룹이 전략적으로 집중해야 할 사업으로 통합하기 위해 우리 기업을 팔고, 외부 기업을 인수하면서,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겁니다. 개별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출보다 이익 증가가 훨씬 큰 것은 우리의 장기 전략과 M&A, 그리고 시장 장악력 확대 등이 모두 성과를 거두게 됐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볼보가 집중하고 있는 트럭・건설기계 등의 사업 전망은 계속 좋은 쪽입니까?

“사업 전망도 중요하지만 우리 내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트럭・버스・건설기계・엔진 등 볼보그룹의 핵심사업은 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규모를 확보했고, 모두 각 분야 세계 1, 2, 3위에 듭니다. 상품 경쟁력 향상을 통해 자체 성장(organic growth・인수・합병을 제외한 성장)을 잘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업 인수・합병을 활발하게 해 나갈 것입니다.

지역적인 확대를 위해, 예를 들어 인도나 중국 시장에서 기업 인수를 계속할 것이고, 우리가 부족한 부문의 확대와 보강을 위해서도 인수를 계속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초 미국 잉거솔랜드의 도로정비 부문을 인수해 우리가 지금까지 전혀 보유하지 못했던 도로 건설기계 사업에 진출했죠. 르노트럭, 닛산디젤을 인수한 것은 우리가 취약했던 중형트럭 부문으로 우리의 영역을 확대시켰다는 의미가 큽니다. 제품 생산 폭을 넓히고 지역적으로도 확대해 매년 10% 이상의 성장을 이룩하는 게 우리 그룹의 핵심 목표입니다.”

—잉거솔랜드는 도로 정비・건설기계 부문을 매각한 후 밥캣(Bobcat) 브랜드의 소형 건설 중장비 부문도 시장에 내놨습니다. 결국 한국의 두산이 다른 2개 부문까지 합쳐 49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볼보는 관심이 없었던 겁니까?

“밥캣은 우리의 기존 제품영역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49억 달러는 너무 비쌌습니다.”

—두산그룹은 49억 달러는 부채가 하나도 없는 상태의 인수 가격이기 때문에 결코 비싼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그 기업을 그 가격에 인수할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판단의 기준은 기업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볼보그룹은 지금까지 수많은 M&A를 통해 성장해 왔는데도 볼보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가치를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우리는 오로지 그 영역에서 충분히 존경을 받는 기업을 인수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업 인수를 통해 시장 점유율이나 생산제품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이 일하면서 미래의 볼보그룹을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수혈할 수 있습니다.”

—그것 이외에 M&A에서 꼭 지키는 원칙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이전에 전혀 해보지 않았던, 모르는 분야에는 접근하지 않고, 우리 내부에 이미 전문가가 있는 사업을 인수합니다. 또 하나는 지역적 확산이라는 목적을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링공은 우리가 이미 만들고 있고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휠로더 생산업체인데다, 고급 제품을 원치 않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꼭 필요한 회사라고 판단해 인수했습니다.”

—미래에 사고 싶은 기업 리스트를 늘 준비해두고 있습니까?

“물론이죠. 우리는 그런 리스트를 ‘미래 대비 시나리오(what if scenario)’라고 부릅니다. 그 시나리오는 미래에 어떤 기업이 시장에 나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리스트는 오로지 제 마음 속에만 있습니다. (웃음)”

—얼마나 많은 회사들이 그 리스트에 있는지를 물어도 될까요?

“절대 안 됩니다. 기업 M&A를 통해 얻은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생각하고 있는 M&A를 계약 전엔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볼보만의 M&A 성공 비법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비법을 말하기 전에 우선 인수하는 회사를 존중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사람과 매니지먼트, 그리고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인수・합병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보통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새 회사를 인수하면 이사회 멤버를 완전히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예전 이사진을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철학을 이어가는 데 더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정표(time line)를 정확하게 짜야 합니다. 만약 사려는 회사의 가치와 우리의 인수 활동, 그리고 일정표가 잘 맞아 떨어져 매력적으로 보이면 우리는 그 회사를 인수합니다. 그게 매력적이지 않으면 인수하지 않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미디어에서 보도하듯 인수・합병을 일과성 ‘이벤트’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미디어가 보도하는 이벤트는 며칠, 길어야 1년 이상 가지 못하지만, 인수・합병의 당사자 회사는 평생을 함께 하는 겁니다. 장기적인 비전을 봐야 한다는 거죠. 명확한 목적을 정하고, 해야 할 일의 목록(activity list)을 만들고, 타임 테이블을 잘 만들어 이들을 제대로 결합시키는 것!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회장 재임 기간 M&A는 모두 성공했다고 봅니까?

“아닙니다. 특히 버스 사업 쪽에서 우리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은 게 좀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 곧바로 그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버스 사업의 경우, M&A를 하려는 시점의 판단이 제대로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버스 사업은 우리의 다른 사업 영역과 달리 집중의 시너지가 부족하고 너무 단편적으로 여기저기 퍼져 있습니다. 시너지를 높여야 하는 M&A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죠.”

—돌이켜 볼 때 최고의 M&A는 무엇이었습니까?

삼성중공업의 건설중장비 부문 인수입니다. 지금 굴착기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맥트럭, 르노트럭도 성공적이었고, 닛산디젤 인수도 좋은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매출 1, 2위 부문의 대형 M&A가 모두 성공적이었다는 게 다행스런 일입니다.”

—최악은 어느 것이었습니까?

“버스 사업에서 북아메리카의 ‘노바(Nova)’라는 버스 회사를 인수한 것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상당히 좋아졌지만 처음 6~7년은 매우 어려웠죠. 다행인 것은 ‘노바’가 그리 큰 회사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웃음)”

—그런 실패는 주로 어떤 이유 때문에 일어납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노바의 경우는 시장 전망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버스 시장은 트럭이나 건설중장비와 달리 별로 성장하지 못했어요.”

—트럭・건설중장비・버스 등은 고속 성장하는 신흥시장과 연관이 큽니다. 승용차 부문을 정리한 것은 이런 사업 부문에 비해 승용차의 성장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나요?

“트럭이나 중장비산업이 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에서 수요가 많고 성장 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승용차 부문 매각 당시 승용차가 이보다 덜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승용차를 좋아하고 더 이상 그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우리의 사업 구조가 승용차 사업을 계속 하기에 적당치 않다고 판단한 거죠. (웃음) 세계 승용차 시장의 경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 하는데, 볼보는 승용차시장 23위에 불과한 현실을 직시해야 했습니다. (승용차를 팔고) 트럭・중장비 부문에 집중하면 그룹의 사업구조가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인구 900만에 불과한 스웨덴이 전 세계 180여개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볼보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키워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스웨덴은 매우 매우 작은 시장입니다. 우리 매출의 단지 5% 이하만을 국내 시장에서 거둬들일 뿐입니다. 게다가 스웨덴은 임금도 높고, 생산비용 역시 결코 적게 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작은 내수시장에 비용도 높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기술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적인 면에서 경쟁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강해져야 했습니다.

볼보의 경우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한 전략을 세우고, ‘스웨덴에 있는 수출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사업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직원들을 개별적으로 존중하면서 열정과 정열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문서화시켜 배려했습니다. 볼보그룹의 직원은 어때야 하고, 리더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볼보 웨이’라는 문서로 명확히 해뒀습니다.”

—’개별적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구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M&A를 했을 때 두 기업 간에는 큰 문화적 차이가 있을 텐데 이를 어떻게 극복합니까?

“두 기업이 합칠 경우 문화에 차이가 큰 것은 당연히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고 성공한 경우를 보면 차이를 인정하고, 너무 많이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경우가 많아요. 프랑스인에게 덜 프랑스적으로 돼야 한다, 미국인에게 미국인답지 않게, 한국인에게 좀 덜 한국인답게 행동해라 식으로 말해서는 안되죠.

문화 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더 집중할 때 높은 생산력을 얻어낼 수 있어요. 우리는 성과나 실적을 정확히 숫자를 매겨 관리합니다. 정확한 데이터가 존재한다면 문화적 차이는 별 의미가 없어지죠.”

—한국인들은 때때로 휴가도 없이, 밤 새워 일하지만,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가정 생활도 제대로 챙기는 유럽회사들에 뒤지는 분야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한국인들은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일하는 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신 적은 없습니까?

“저는 한국의 기술,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hard working) 사람들로부터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1970년대 말에 처음 한국에 갔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을 했죠. 한국인들은 일하는 것에 비해 발전이 느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되돌아보면 사실 엄청난 속도였습니다. 삼성의 예를 들어보더라도 20년 전만해도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은 브랜드였지만, 지금은 세계를 선도하는 회사가 됐지 않습니까. 그러나 일과 생활은 균형을 이뤄야 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속도를 낼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무조건 일만 무리해서 열심히 한다고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겠죠.”

—볼보그룹은 각 부문의 본사를 경쟁력 있는 해외에 두는 경영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장단점이 있을 텐데 그런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나요?

“글로벌 시장에 다가서는 좀더 효과적인 방법은 시장 가까이에 본부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굴착기 부문은 한국에 헤드쿼터를 뒀고, 벨기에프랑스미국 등에도 중요 부문별 본사를 배치했죠. 리더십 그룹도 다양성을 갖는다면 글로벌 기업으로서 좀더 효과적이고 빠르게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단적인 예로, 볼보그룹의 이사진은 6개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볼보그룹은 ‘품질(quality)’, ‘안전(safety)’, ‘환경(environment)’을 기업의 핵심 가치(value)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환경’은 기업에는 기본적으로 비용으로 작용하는 것 아닌가요?

“품질과 안전은 1927년 볼보가 창업될 때부터 정해진 것이고, 환경은 1970년대 초에 추가됐습니다. 우리는 기업문화나 전략, 핵심가치를 잘 바꾸지 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환경이 비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경은 기업에게 이익을 창출해주는 생산품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투자할 때 환경문제가 법적으로 걸리지 않는 쪽에만 신경을 쓴다면 환경은 비용이 되겠지만, 새로운 세대의 생산품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면 오히려 매출에서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면서 법적인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뿐 아니라 고객들이 흔쾌히 좀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환경친화적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볼보그룹 회장을 맡은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서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볼보그룹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비결이요? (웃음) 저는 매일 아침 훌륭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동료들을 만납니다. 그들과 함께 오늘날의 글로벌 그룹을 만들었고, 비결이라면 바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차기 CEO를 키워내기 위한 프로그램은 있습니까?

“준비돼 있습니다. 차세대 CEO를 키우기 위한 전략도 있고, 관찰하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뤄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한 후 3년 내지 10년짜리 프로젝트를 맡기고, 성과를 평가하고,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CEO를 키우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오너 경영인이 대를 이어가며 직접 경영하는 게 부당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오너 직접 경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볼보그룹의 지주회사는 AB볼보이다. 그러나 AB볼보는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트럭 부문을 인수・합병하면서 르노그룹 측에 상당 부분의 지분을 제공해, 볼보그룹의 단일 주주로는 르노가 21.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러나 AMF 펜션&펀즈(Pension and Funds・3.9%), 스위드뱅크 로버 펀즈(Swedbank Robur Funds・2.9%) 등 스웨덴계 금융회사와 펀드들이 나머지 지분을 분산 소유하고 있어 어느 한쪽이 독주하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한국에서는 오너 경영인, 전문 경영인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스웨덴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바람에 오너가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우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효율성입니다. 한국과 스웨덴이 ‘결혼’해 이런 양국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하는 시스템이 나온다면 그게 더 효율적이겠죠. 어떤 경영 체제가 효율적인지는 성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기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은 없습니까?

“한국 기업의 활동을 보며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는 것 이외에는…. 볼보를 이끄는 것도 버거운데 다른 기업에 대해 뭐라 얘기할 게 없어요. (웃음)”

—한국의 건설중장비 제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볼보건설장비 부문은 볼보와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잉거솔랜드의 도로정비부문은 볼보가, 소형건설중장비 및 부착품 부문은 두산이 인수했습니다. 경쟁자로서 두산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고 보십니까?

“경쟁자를 평가하려면 경쟁자보다 좀더 나은 회사를 먼저 만들어야겠네요. (웃음)”

◆요한손 회장은

냉정함, 열정 그리고 뚝심

레이프 요한손(Leif Johansson) 회장은 열정과 냉정함을 동시에 갖춘 경영자다. 인맥이나 인간적 유대에 얽매이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한 번 결심한 일은 강철처럼 밀어붙인다.

1951년 예테보리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 볼보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26세에 역시 예테보리에 있는 샬머(Charlmers) 공대에서 공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가구업체인 포싯(Facit)의 사무기기사업부서장・사장을 거쳤고, 1984년부터 1997년까지 스웨덴 최대 재벌 발렌베리(Wallenburgs) 가문 소유인 일렉트로룩스(Electrolux・유럽 최대 가전업체)의 부사장・사장・회장을 지냈다. 기술자 출신인 그의 아버지 레나트(Lennart) 요한손 역시 발렌베리 가문 산하 기업에서 최고경영자로 일했다.


◆볼보그룹 M&A 약사(略史)

▲1997년
– 레이프 요한손, 볼보그룹 CEO로 부임
– 볼보건설기계, 캐나다의 모터 그레이더 생산업체 ‘챔피언 로드 머시너리'(Champion Road Machinery)’ 인수

▲1998년
– 볼보건설기계, 한국의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 인수, ‘볼보건설기계코리아’로 사명 변경
– 농기계 부문 자회사 메칼락(Mecalac)의 다목적기계 생산부문 매각

▲1999년
– 볼보자동차를 포드에 매각, 승용차 사업에서 철수
– 볼보에어로(Volvo Aero), 보잉사와 제휴해 ‘제트서포트(Jet Support)’사 인수
– 스카니아(Scania) 주식 20% 매입
– 미국 버스 업체 블루버드(Bluebird) 인수

▲2000년
– 볼보에어로, 트럭 부품생산부문을 핀베든(Finnveden)사에 매각
– 볼보버스, 상하이자동차(SAIC・Shanghai Automotive Industry Co.)와 중국에 새 버스기업 설립 합의
– 미쓰비시 푸소 트럭・버스(Mitsubishi Fuso Truck & Bus Co.) 지분 인수

▲2001년
– 르노(Renault) 트럭 및 미국의 맥(Mack)트럭 인수
– 볼보건설기계, 미국 업라이트(UpRight)사로부터 텔레스코픽 핸들러(telescopic handler・건설 현장의 화물 이송・적재에 폭넓게 사용되는 물류 장비)의 개발・생산권 인수
– 볼보건설기계, 텍스트론(Textron)의 자회사인 옴니큅(OmniQuip)의 스키드 로더(skid steer loader・굴착된 토사・골재・파쇄암 등을 운반기계에 싣는 중장비) 사업 부문 인수

▲2002년
– 볼보건설기계, 폴란드와 중국 상하이에 생산 시설 설립

▲2003년
– 빌리아(Bilia)의 트럭 및 건설기계 생산부문 인수

▲2004년
– 북미 버스생산업체 프레보스(Prevost Car Inc.)의 나머지 50% 지분 인수
– 르노트럭, 중국 둥펑(Dong Feng)모터스와 중국 내 트럭・부품 합작회사 설립 양해각서 체결

▲2006년
– 닛산(Nissan)디젤 지분 13% 인수, 최대 주주로 등극
– 볼보버스, 인도 자이코 오토모빌스(Jaico Automobiles)와 인도 내 버스 차체 생산 합작회사 설립

▲2007년
– 볼보건설기계, 중국 최대 휠로더 메이커 링공(Lingong) 인수
– 볼보건설기계, 미국 잉거솔랜드(Ingersoll Rand)의 도로정비 사업부문 인수
– 닛산디젤 인수

입력 : 2008.01.1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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