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 달리기, 44분대 진입은 실패했지만…

By | 2009-10-09

어제(10월 8일 목요일) 저녁은 기로빅스 목달이 있는 날이었다.

올해 7월부터 몇 년만에 기로빅스 운동을 다시 시작한 후, 최근에 6주 연속으로 10km 달리기 올해의 내 기록을 경신해 오고 있었다. 지난주 기록은 45분 08초. 어제의 목표는 44분 40초대.

결과부터 말하면 기록 경신은 했으나 44분대에 진입하는 것은 실패했다. 지난주 기록을 5초 당기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목달이었으므로, 어제 달린 과정을 기록해 둔다.


나라한의원에 모여 몸을 푸는데, 몸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릎 연골도 이상했지만, 열흘 전에 뛴 마라톤 풀코스의 후유증으로 왼쪽 종아리 근육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인데다, 지난 화요일 운동을 다 따라할 수 없었던 체력이 이틀이 지나도 덜 회복된 듯했다.

그렇더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부상이 아닌 이상 목달에서 게으름을 필 수는 없으니까. 아무도 그런 적이 없으니까…

출발 지점까지 뛰어서 가는 동안, 처음 나온 성수 씨는 심하게 헉헉댄다. 나도 처음은 저보다 더했겠지 생각하면서, 달리다 부상을 입는다든가 해서 첫 인상을 망칠까 조금 우려도 되었다. 출발부터 세박자 호흡을 하기로 작정하고서. 세박자 호흡은 한번을 짧고 강하게 내뱉고 두번을 연달아 들이시면서 달리는 호흡 방법이다.

손목시계의 반복 알람을 4분 29초에 맞췄다. 어제 내 상태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이렇게 1km 구간 패이스로 시각을 맞추면서도 한편으로는 100m마다 알람이 울 것이라고 착각을 했다는 점이다. 출발을 했는데, 100m를 지나도 200m를 지나도 알람이 울지 않자 그제서야 내가 어이없는 착각을 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300m 이내에서 전체 패이스를 맞추어 온 점에 비추어 보면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부득이 배꼽시계로 어림잡아서 웬만큼 힘들게 뛰어 보았다.

출발을 하자 마자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가 결리던 것부터 처음 겪는 증상이었다. 거의 1km를 뛰고 나서 증세를 잊을 수 있었는데, 1km 지점을 6~7m 남기고 알람이 우는 게 아닌가? 아차, 패이스가 많이 늦었구나. 2km, 3km 지점을 지나기 전에 패이스를 정상으로 맞추기 위해서 속도를 조금 강하게 올렸다. 2km 지점은 2m 정도 남은 상태에서 알람이 울었다. 조금 급하게 패이스를 회복한 듯하여 다른 때보다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3km 지점은 또다시 6~7m 남기고 알람이 울었다. 어이쿠~ 3km 지점까지는 패이스를 회복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이러다 반환점까지는 더 늦어질 것만 같다.

여기서부터는 승부를 던져야 한다. 반환점에 도착할 때는 목표인 22분 20초 안으로 돌지 않으면 44분대에 들기는 커녕, 지난주 기록에도 밀리게 될 것이다. 보통 후반에 20~30초는 쳐졌으니까. 강하게 쓰리호흡을 하면서 달려 보지만, 여전히 몸이 무겁고 바닥에 조금의 굴곡이 있는 곳을 지날 때는 다리가 꼬이는 느낌이다.

4km 지점을 통과할 때도 알람이 한참 먼저 운다. 이거 정말 지난주보다 더 힘들게 달리고 있는데도 패이스는 지난주보다 못한 것 같다. 5km 반환점을 돌기 전에 알람이 운다. 허걱? 반환점 돌면서 시간을 보니 22분 30초다. 순간 아찔하면서 패이스가 확 떨어지는 것 같다. 잠깐 계산을 해 본다. 최근에 이렇게 힘겹게 반환점까지 달려온 적이 없으므로 후반부는 전반부와 같은 패이스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할 것이고, 그렇다면 45분 후반 또는 46~7분대에 들어갈 것 같은 몸 상태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몰려온다. 순간 버럭 나 자신을 자책한다.

지금까지 후반부를 느리게 달렸다면, 오늘 한번 후반부를 더 빨리게 달려 보는 거다. 안 될 수도 있지만, 죽기 살기로 한번 뛰어 보자. 네거티브 스플릿(후반 가속주)을 올해 처음으로 해 내면 44분대에 진입할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계산 상으로는. 그렇게 나 자신을 후려치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50~60m를 쳐진 패이스로 달리고 있다 강한 세박자 호흡을 시작하면서 전력 질주를 하다시피 하면서 패이스를 바짝 끌어 올렸다. 가다가 쓰러지더라도 1km만이라도 전력질주를 먼저해 보자는 각오로 남은 거리는 생각하지 않고 골인 지점이 1km 앞에 있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을 다 쏟았다.

6km 지점을 통과할 때쯤 알람이 우는 것을 보고 조금 패이스가 올라간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 봐, 마음먹기 나름이잖아? 다 죽을 것 같았는데 후반 1km를 전반보다 더 빨리 달린 셈이니까. 그래 일단 1km만 더 해 보는 거야. 다행이 이 구간은 살짝 내리막이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서늘한 저녁 날씨 덕에 정신은 아직 맑은 것 같았고, 7km 지점은 통과 후에 알람이 울었다. 야호!

이제 남은 3km. 14분만 버텨내면 된다. 100m마다 선명한 구간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다. 거리 표시를 볼 때마다 새로 출발하는 것처럼 세박자 호흡을 강하게 내뱉기 시작했다. 어차피 목표 달성과 실패는 골인 지점을 불과 100m 일찍 통과하느냐 늦게 통과하느냐의 차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그 짧은 거리를 조금 편하게 가느라고 늦게 들어가? 안 될 말이지… 나 자신을 이겨야 한다. 내 다리야, 심장아, 오늘만은 나를 좀 도와다오. 그렇게 거의 100m마다 속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을르면서 결의를 새롭게 하면서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데… 그만 1800 표지를 통과 직후에(남은 거리는 1.7km) 마른 침을 뱉는데 못젖이 말라붙으면서 구토가 나온다.

1시 이후로 먹은 게 없으니 내용물 없는 구토여서 뭐 코에 뭔가 역류해서 막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눈과 코와 입으로 내장에 휘말려 나올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고 다시 뛰어야 하는데 아직 구토의 여운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호흡을 가다듬으려다 다시 구토… 서너 번 그러다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어서 침 퉤퉤 뱉어 주고 시동을 걸어본다. 살살 달리는데 괜찮은 것 같아서 그냥 내쳐 달린다. 허비한 20~30초를 벌충해야 하려는 심정으로 1900 표지를 지나면서부터 마지막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반환점 이후부터 계속 전력질주를 해 왔지만, 그건 잊었다.

8km 지점을 60m쯤 남겨두고 알람이 운다. 100m 이상 쳐졌을 줄 알았는데, 후반부에 무리해서 벌어둔 패이스 덕분에 60m만 쳐졌구나. 남은 2km 동안 최대한 당겨야 한다. 헌데 너무 힘들어서인지 세박자 호흡이 자꾸 무너진다. 그럴수록 100m 단위 표지를 지나면서 세박자 호흡을 강하게 다시 시작하고 다시 강하게 출발하기를 반복한다. 오늘이 올해 기로빅스 목달 중에서 가장 힘들게 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뛰어와서 겨우 1.5km 남겨놓고 흐느적거려서 후회할 수는 없다. 더 세게, 더 가혹하게, 바로 저기가 골인 지점이야, 아무 생각 말고 그냥 달려, 달려…

드디어 9km 지점이 보인다. 당기자… 헛, 그런데 50m쯤 남겨두고 알람이 운다. 으이그… 겨우 10미터 당겼어? 그래도 안 토했으니 됐어. 어차피 한번 토하나 두번 토하나 마찬가지잖아? 이제 남은 4분 20초만 죽어라 뛰면 끝난다. 기회는 남은 1km뿐이다. 토하면 토하는 거고 안 토하면 네거티브 스플릿을 올해 들어 처음으로 달성하게 될 거고…

600m… 500m… 너무 힘들다. 골인 시각이 아슬아슬할 것 같다. 지금 1~2초만 더 당기고 싶은 욕심에 호흡을 다시 강하게 해 보는데, 더는 안 된다. 에라, 모르겠다. 400m를 남기고 두박자 호흡으로 바꿨다. 그런데 스피드는 안 오르고 호흡은 금방 터질 것 같다. 안 되겠다. 다시 세박자 호흡으로 되돌리고, 대신 무릎에 힘을 줘 본다. 왼발 종아리 근육이 출발 전부터 땡겨서 제대로 발을 차지를 못한다. 소리라도 질러 본다. 아악!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온다. 힘만 든다. 300m… 200m. 두박자 호흡이다. 아아악! 정말 스피드 안 나온다. 골인 지점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마지막 알람이 울어버린다. 아직 50m는 더 남은 것 같은데… 어찌나 길고 힘들지? 이제 건질 건 후반 가속주 달성밖에 없다 생각하면서 젖먹던 힘까지 내서 겨우 골인을 하는데, 45분 3초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 오늘 45분 벽은 못 깼구나, 네거티브 스플릿도 3초 차이로 못했구나. 지난주 기록은 5초 당겼구나…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기록 달성 실패나 성공보다는 더 큰 의미가 있는 목달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이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와 의미를 얻게 된다는 점을.

몸 상태가 안 따라줘서 당초 목표 달성은 못했지만, 스스로에게 그 어떤 날보다 자랑스럽게 뛴 선물을 안겨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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